비즈니스 매너, 프로페셔널리즘,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형식을 파괴하는 것과 예의를 버리는 것은 다른 이야기인데요. 요즘은 형식을 파괴를 넘어, 예의까지 파괴하는 모습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단 한 번도 정장에 구두를 신고 출근해본 적이 없습니다. IT 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지금까지, 늘 편한 복장으로 일해왔어요. 그런데도 저는 미팅 매너나 기본적인 비즈니스 예의 같은 걸 배웠습니다. 신입 사원 연수원이 아니라, 선배들에게서요. 하지만 요즘은 기본적인 매너나 예의를 요구하기가 어려운 시대인 것 같아요.
15초 요약
자율이란 아무렇게나 또는 가장 편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판단하라는 뜻입니다.
전통 산업군 회사나 대기업들은 신입사원 때, 회사 연수원에 보내 기본적인 비즈니스 매너를 가르칩니다. 명함 주고받는 법, 미팅 시간, 회신하는 법, TPO 등을 말이죠.
반면 IT 회사엔 그런 교육이 없어요. 인사팀이나, 컬쳐팀에서도 알려주지는 않아요. 그래도 예전에는 선배가 후배에게 알음알음 알려줬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없습니다. 직급 체계도 많이 사라졌고, 선후배 문화도 옅어졌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아무도 이걸 가르치지 않고, "기본"이라는 감각 자체가 흐려집니다. 문제는 그게 사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회사 밖, 클라이언트 앞에서까지 있는그대로 보여지는거죠.
Y's Insight
이건 "요즘은 다들 복장이 이상해" 같은 이야기는 아니에요. 오히려 저 역시도 편한 복장으로 출근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율을 매우 좋아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복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자율속에서도 어떻게 기본을 지키는가에 관한 겁니다.
사회 초년생 때, 설레는 첫 외부 미팅을 앞두고 선배가 저에게 슬쩍 알려줬습니다. 미팅 장소에 10분 일찍 도착해 있어라, 명함은 두 손으로 받고 바로 집어넣지 말고, 테이블에 잠깐 올려둬라. 미팅이 끝나면 회의록을 정리해서 메일로 공유를 해라. 이런 매너, 태도, 예의 같은 것들을 내리 사랑으로 받았습니다.
이런 아주 사소하지만,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것들에 관해서는 아무도 문서로 정리해준 적 없지만,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졌어요. 잔소리처럼 들릴 때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저게 맞았다' 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예전에 비해 조직 구조가 많이 바뀐게 가장 큰 영향일 것 같아요. 스타트업 및 IT 계열 회사엔 대리, 과장, 부장과 같은 직급이 거의 없습니다. 다들 "ㅇㅇ님", "프로님", "매니저님" 처럼 보편적인 호칭으로 부르죠. 수평적인 문화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긴해요. 하지만 부작용이 하나 있습니다. 위,아래 또는 선,후배의 경계가 흐려지니 연장자나 선배가 후배에게 뭔가를 짚어주기가 애매해진 거예요.
예전 같으면 선배가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하고 알려줬을 상황에서, 지금은 다들 말을 안해요. 괜히 말했다가 꼰대 소리 들을까 봐, 뭔데 잔소리지? 라고 여겨질까봐 아예 터치를 안 합니다. 그러다보니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 조직이 됐어요. 신입은 배울 곳이 없고, 선배는 가르칠 명분이 없습니다. 이렇게 비즈니스 매너는 조용히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갑니다.
그렇게 사라지는 기본들은 복장이나 시간 약속만이 아니에요. 오히려 이런것들도 많이 보여요.
회신과 팔로업
메일이나 메시지를 받고도 며칠씩 답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본인은 "바빠서, 아직 결론이 안 나서 못 했다"지만, 보낸 사람은 그저 방치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당장 답을 못 줘도 "확인했습니다, 언제까지 정리해서 회신드릴게요" 한 줄이면 충분해요. 회신은 결론을 주는 게 아니라, 상대를 기다리게 두지 않는 배려입니다. 미팅이 끝난 뒤 논의된 내용을 한 번 정리해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한 통이 있고 없고에 신뢰가 나뉩니다.
소개하는 순서와 방식
여러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누구를 누구에게 먼저 소개하는지, 이름과 역할을 어떻게 붙여 말하는지에도 예의가 있습니다. "이쪽은 저희 팀 ㅇㅇ님이고, 백오피스 어드민을 맡고 계세요"처럼 상대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있게 맥락을 얹어주는 것. 이름만 툭 던지고 끝내면, 소개받은 사람은 대화의 실마리를 잡지 못해요.
미팅 중의 태도
자기 발표 차례가 아니라고 노트북으로 다른 일을 하거나, 테이블 밑에서 폰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은 멀티태스킹이라 여기지만, 말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당신 이야기는 흥미롭지 않다, 중요하지 않다"는 신호로 읽혀요. 특히 외부 사람이 발표 중일 때 우리 쪽 사람들이 각자 화면만 보고 있으면, 그 자체가 회사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습니다.
감사와 확인의 말
누군가 시간을 내주거나 도움을 줬을 때, "감사합니다"를 제때 전하는 것. 요청을 받았으면 "알겠습니다, 처리하겠습니다"라고 응답을 남기는 것. 사소해 보이지만, 이 짧은 말들이 빠지면 상대는 불쾌하거나 불확실한 상태가 되어버려요. 반응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함께 일하기 편한 사람이 돼요.
근데 말이죠
대단한 격식과 예의를 차리자가 아닙니다. 전부 "상대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들이에요.
문제는, 아무도 이걸 짚어주지 않으면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자기가 뭘 놓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겁니다.
회사내에서는 덜 신경쓰고 편하게 행동하는 것에는 것 자체엔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동료들끼리 일하는 사무실에서 반바지를 입든, 슬리퍼를 신고 출근을하든, 유행어나 신조어를 쓰든 상관없어요.
문제는 그게 회사 밖으로 나갈 때예요. 클라이언트 미팅, 파트너사와의 자리, 회사를 대표해 외부 사람을 만나는 순간. 사내에서 굳어진 습관은 그 자리에서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거든요. 트레이닝복 차림이나 반바지에 슬리퍼로 나타나고, 명함을 어떻게 받는지 등이요. 자율의 의미가 "언제 어디서나 내가 편한 대로" 는 아닌 것 같아요. 진짜 뜻은 "상황에 맞는 행동을 네가 알아서 판단하라"입니다. 판단의 권한을 준 건데, 판단 자체를 안 하니 비호감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비호감이 회사 밖에서 드러나면, 솔직히 함께 있는 사람이 더 민망한 것 같아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위계는 버려도 되지만, 그 위계가 실어 나르던 선배, 후배간의 교류 방식은 살려둬야 하지 않을까 입니다. 선배가 후배에게 자연스럽게 전하던 것들을, 이제는 아무도 전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요즘, 꼰대 소리를 조금 각오하고서라도 동료들에게 슬쩍 말해주려 합니다. 예전에 제 선배가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요.
자율은 사실 규칙보다 더 어려운 요구예요. 규칙이 있을 땐 규칙만 지키면 되지만, 자율은 매 순간 스스로 판단해야 하니까요.그 판단을 스스로 해내는 사람에게 자율은 자유가 되고, 그 판단을 놓아버린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거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안 배워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갖춰야 한다는 뜻이에요.
기본이 사라진 자리에서 기본을 지키는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남들과 확실히 구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