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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Insight#25

지금은 하지 않을 선택

성장 · 스킬셋2026.07.24

아무것도 없어서 무모했던 그 시절이 저한테 사람을 남겼어요. 근데 효율만 챙기느라 지워버린 것들이, 요즘 제 발목을 잡네요.


여러분은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거나, 지금이라면 절대 안 할 선택들이 있으세요?

이런 회상은 선배들 앞에서 꺼내기엔 좀 쑥스럽고 웃기기도 한데요. 저도 결혼 전이나 초년생 때를 떠올리면 "아 그땐 그랬지" 싶은 포인트들이 있어요. 지금이라면 다시 못 할, 안 할 선택들이요. 그럼에도 그때 그 선택을 해서 얻은 게 분명히 있더라고요.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15초 요약

  •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시절엔 무모하고 간절했어요. 지금이면 민망해서 못 할 그 선택들이, 돌아보니 저한테 사람과 성장을 남겼더라고요.

  • 반대로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사람 사이의 과정을 건너뛴 선택들은, 지금 와서 문제가 되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비효율을 다시 택하는 중입니다.

알아두면 좋은 용어

두괄식 (BLUF, Bottom Line Up Front) — 결론부터 말하는 방식이요. 문서에선 좋은데, 사람 사이 대화에선 이게 늘 정답은 아니더라고요.
세렌디피티 (Serendipity) — 계획에 없던 길에서 뜻밖의 걸 얻는 거요. 효율만 따지면 잘 안 생기고, 오히려 돌아가거나 손해 보는 데서 생겨요.

Y's Insight

그땐 왜 그렇게 간절했을까

생각해보면 2016년, 무작정 쿠팡이라는 회사에 들어간 것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 PM 되고 싶어요"라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닌 것도, 지금 하라고 하면 민망해서 못 할 행동이에요.

그분들께는 스치는 인연일지라도, 제가 멋있다고 생각한 분들한테 "커피 한잔 괜찮으실까요?" 물어보던 용기 같은 거요. 그중 한 분이 저한테 이렇게 물었어요. "너 왜 PM 되고 싶은데? 멋있어 보여서 그런 거 아니야?" 맞아요. 그 커피 상대가, 저한테 PM이라는 꿈을 심어준 롤모델 중 한 분이었어요. 그때는 이 질문에 어버버했는데, 지금이라면 안 그럴 것 같아요. "네. 맞아요. 너무 멋있어 보여요." 라고 대답할 것 같아요. 솔직하게.

쿠팡에선 어떻게든 Product 조직에 가고 싶어서, 열심히 일하는 티를 진짜 팍팍 냈어요. 다른 조직 일도 잘하기로 유명한 시니어(쿠팡은 직책 대신 레벨 제도가 있었어요)가 있으면, 직간접적으로 "이거 담당자 저예요" 하고 티를 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돌고 돌아서, 첫 Product 조직 신규 PM으로 '쿠팡 프레시백' 주제를 발표하던 미팅에서 그분을 다시 만났어요. 좋은 피드백을 많이 주셨던 게 아직도 생생해요. 그리고 나중에 무신사에서 또 만났고요.

뭐가 저를 그렇게 간절하게 만들었을까요. 가진 게 없어서 무모하기까지 했던, 증명을 거리끼지 않던 그 의지랑 용기가 요즘 부쩍 생각나요.


잃을 게 없으면 무서울 것도 없더라고요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이 깔린 사람은 마다할 일도, 두려워할 일도 없어요. 원하는 직무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싶어서, 호불호 없이 주어진 일을 매니저가 만족할 수준까지 뭐든 해냈던 것 같아요. 욕도 먹고, 부딪혀도 보고, 먼 길 마다 않고 얼굴 비추러 가고요. 물류 현장분들은 자주 얼굴을 비추려고 하는 것만큼 좋은 접점이 없기는 했죠. 겸사겸사 저도 데이터로만 보던 프로세스를 실제로 알아가기도 하고요. 특히 못하는 건 못한다고, 모르는 건 부족하다고 그냥 인정했어요. 내려놓고 대화하고, 제가 부족하다는 걸 드러내는 걸 거리끼지 않으면서 겸손하게 도움을 요청했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은근히 큰 힘이었어요.

그린랩스에 가면서 회사 근처에 오피스텔까지 얻고, 주말에만 남편을 보는 삶을 택했던 것도 이 시절 얘기예요. 저 그린랩스 다닐 때, 진짜 3개월 천하로 끝났는데 그때 저는 이 회사에 뼈를 묻을 생각이었어요. 야근을 밥 먹듯이 할 거니까 집에 갈 시간도 없을 거라고, 진짜 그렇게 믿었거든요. 오피스텔 계약서 사인하던 날 좀 들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로부터 몇 달 후. 입사 만 2개월. 회사가 희망퇴직을 선언했어요. 그 오피스텔, 짐도 다 못 풀었어요. 복비 물어주고 집 다시 내놨고요. 계약 기간 남은 동안 거의 그 방에서, 그리고 문정동에서 술만 마셨어요. 뼈 묻겠다던 방에서, 나갈 날 세면서요.

그래서 남은 게 없냐고요? 그건 또 아니에요. 이상하게 그때 저는 사람을 얻었어요. 다 무너지는 와중에 제 진심이랑, 평소엔 절대 안 보여주던 사적인 모습까지 다 까발리면서요. 멀쩡할 땐 안 생기던 관계가, 하필 그 엉망인 시기에 생기더라고요.


근데 이건, 지금이라면 안 합니다

여기까진 "좋은 뜻"의 선택이었어요. 이제 반대쪽을 얘기해야 하는데요.

저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좀 부족한 편이에요. 저와 세상만 있는 느낌? 그래서 주니어 때도 "너무 로봇 같다", "의도랑 다르게 공격적인 말투로 느껴진다"는 피드백을 해마다 들었던 것 같아요. 이게 상대가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효율적으로 소통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1차원적인 언어를 많이 쓰고, 제 생각 과정을 잘 노출하지 않았어요.

누가 질문을 하면, 그 질문의 의도랑 원하는 바를 먼저 파악해서 상대 시간도 아끼고 저도 한 번에 양질의 답을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한참 생각한 뒤에 답하곤 했죠. 이게 제 머리가 맑고 정돈돼 있고, 주변에 관심을 두고 있을 땐 굉장히 잘 통했어요. 하지만 정신 똑바로 못차리는 요즘 같은 때는 쥐약이에요.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회사 슬랙 채널에서, 제가 만든 봇이 요약하는 수치가 다른 봇이랑 안 맞아서 어떤 분이 질문을 몇 개 던지셨어요. 데이터 기준을 물으시거나, 봇 메시지가 왜 여러 개인지 같은 거요. 저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여쭤봤어요. "혹시 이 슬랙 채널의 용도가 무엇인가요?" 그러고는 바빠서 다른 일을 했는데… 옆에서 지켜본 분은 이걸 꽤 날카로운 대화라고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이 채널에 맞는 용도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뭐가 문제세요?' 같이 읽히셨나봐요. 사실 제 의도는 '채널에 Bot의 메시지가 스팸 같다고 느껴진다' 라는 그분의 말에서 시작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채널의 의도를 다시 파악하고, 다른 봇도 하루에 메세지가 10개씩 오는데 이 봇은 안된다고 생각하실까? 아, 그럼 이 채널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부터 내가 이해해야겠구나. 그래서 나온 질문이 결국은 "혹시 이 슬랙 채널의 용도가 무엇인가요?" 였답니다.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티키타카, 핑퐁 같은 과정을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걸로 여기면서 살아요. 일상도 그래요.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그마저도 분기에 한 번이면 자주 보는 편이에요. 예전엔 사람을 얻거나 과정까지 아름답게 만드는 데 공을 안 들였고요. 이게 요즘 문제가 됩니다. 누군가와 협의하고 조정할 일이 많은데, 제 말이 상대한테 잘 안 닿는 경험이 반복되고 있거든요.

이게 요즘 제 가장 큰, "지금이라면 하지 않을 선택"인 것 같아요. 그때로 돌아간다면, 저는 이제 그 어렵고 복잡한 과정조차 즐겨보고 싶어요.

이런 액션을 취해보세요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해보고 있어요.

1. 내려놓기. 이미 제가 부족한 사람인 게 만천하에 드러났고, 다시 바닥 찍고 올라와야 한다는 걸 인정하는 거요.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엔 두괄식보다 효과적인 전달법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어쩌겠어요. 다시 쌓아올려야 하는 사람이 저인 것을.

2. 용기 내기. 제가 먼저 다가가서, 완벽하게 준비 안 된 상태로도 질문을 던져보기. 너무 완벽하게 만들어서 가져가려다 흘려보내는 시간을 줄이기. 이건 우리 회사 디자이너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완벽할 필요없다고. 내려놓으라고. 너무 감사한 말씀이죠.

3. 과정에 일부러 시간 쓰기. 결론부터 툭 던지지 말고, 상대가 뭘 원하는지 넘겨짚어 한 번에 끝내려 하지 말고, 되묻고 주고받는 그 왕복 자체에 시간을 써보는 거요. 저한테 사실 제일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아요.

또 무엇이 있을까요? 여러분이 하는 방법도 궁금해요.

근데 말이죠

여기까지 읽으면 "그럼 효율적으로 산 게 잘못이었다는 거예요?"라고 하실 수 있어요. 아니요. 그 효율 덕분에 저는 빠르게 컸고, 남들 두 번 할 걸 한 번에 끝낸 적도 많아요. 문제는 그게 아니라, 제가 사람 사이의 과정까지 싹 다 비효율로 분류해서 지워버렸다는 거예요. 지울 것과 남길 것을 구분 못 한 거죠.

파커(Parker)님이 제가 쿠팡에서 퇴사하려 할 때 이런 말을 했어요. 회사에서 남는 건 성과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2022년에 들었는데 매달 생각나요. 그때 저한테 진짜 필요한 말이었거든요.

실제로 그렇더라고요. 쿠팡에서 남은 건 지표가 아니라 율(Yul)님이랑 또래 동료들이었고, 그린랩스에서 남은 건 전우 같은 사람들, 무신사에서 남은 건 신뢰로 엮인 동료들이에요. 그리고 지금 다니는 마크비전에서 저는 뭘 가져갈 수 있을까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래서 요즘 제가 그 '과정'을 다시 택하려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들, 그리고 그 반대인 것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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