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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Insight#19

디지털치매 2.0

AI 활용 · PM의 사고력2026.06.12

클로드가 답을 줄 때, 내가 잃어버리는 것

빠른 답에 익숙해지니, 점차 답을 찾는 길을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저는 요구사항 하나를 작성할 때도, 로직의 구멍을 찾을 때도, 생각도 전에 클로드부터 켭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 써 내려간 PRD가 언제 마지막이었지 하고 생각합니다.

15초 요약

AI가 사고력을 죽이는 게 아닙니다. 판단하는 단계를 건너뛰는 것이 사고력을 죽입니다. 해커뉴스에서는 "LLM에 오래 의존하면 결국 AI 없이는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이것을 디지털 치매 2.0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곧바로 "계산기도 똑같은 걱정을 받았지만 사람들은 멍청해지지 않았다"는 반박글이 달렸죠. 이 논쟁에서 정작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었는데요. 능동적으로 쓰는 사람과 수동적으로 쓰는 사람의 격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사용법이라는 겁니다.

Y's Insight

오늘의 Y's Insight는 쿠팡, 카카오, 토스 등 다양한 산업군과 조직을 경험한 현업 PM 14년 차 멘토 Parker가 작성하였습니다.

저는 처음 기획자로 업무를 배울 때,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실력이라고 배웠습니다. 새 기능을 기획해야 한다면 비슷한 걸 먼저 만든 서비스를 찾아보고, 우리 고객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운영팀과 CS에 흩어진 정보들을 모았어요. 모아진 정보들이 한 번에 답을 주진 않았습니다. 어떤 건 우리 상황에 안 맞고, 어떤 건 맞는 것 같긴 한데 데이터는 아니라고 말하고, 근거가 마련될 때까지 파고들었던 것 같아요. 답을 찾으려고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사고하는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길렀던 것 같아요. 이후로는 점차 저도 모르게 제품과 고객에 대한 문제와 해결 방법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어요.

근데 지금은 이 반복적인 행동들이 사라졌습니다. 기획 의도나 문제만 입력하면 클로드가 그럴듯한 문제 정의와 해결방법을 바로 내놓으니까요. 빠르고 편한데,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머리가 굳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제 AI가 정리해 준 내용이 도무지 생각이 안 나요. 오늘 회의에서 누가 물으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도 있더라고요. 이게 디지털 치매 2.0이 가리키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AI를 멀리하자"는 말에는 동의하지는 않아요. 계산기는 답을 주긴 하지만, 더할지, 뺄지의 식을 세우는 것은 사람이 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계산기를 써도 문제를 이해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클로드는 문제를 통째로 던지면 답이 통째로 나옵니다.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정의하는 일도, 무엇을 먼저 할지 판단하는 일도 모두 생략됩니다.

바로 여기서 같은 도구를 쓰더라도 능력이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은 클로드에게 초안을 받아 이 기획의 구멍이 뭔지, 내가 놓친 에지 케이스가 뭔지를 확인하는 데 사용합니다. 클로드를 거치고 근거들이 더 단단해져 있어요.

다른 사람은 클로드가 써준 기획서를 그대로 들고 회의에 들어갑니다. 클로드를 거치고 나면 자기 판단이 그 자리에 없습니다. 건너뛰었으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앞사람은 더 빨리 성장하고 뒷사람은 성장할 기회를 더 빨리 잃습니다. 격차가 선형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진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차이가 다른 직무보다 PM에게 특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디자이너의 시안이나 개발자의 코드는 결과물이 눈앞에 바로 보입니다. 어색하면 티가 나고, 안 돌아가면 멈춰요. 그런데 PM의 결과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AI로 받은 문제 정의, AI가 정리해 준 설루션, AI가 그럴듯하게 써준 PRD는 틀려도 당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요즘 면접에서 잘 짜인 답안 대신 구조화나 판단의 근거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곳이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회사가 보고 싶은 건 (AI를 얼마나 잘 쓰느냐도 있긴 하지만), AI가 없을 때 이 사람의 사고와 판단력이 얼마나 높은지입니다. 그리고 AI가 해주지 못하는 게 하나 있어요. 이 문제를 왜 지금 풀어야 하는지, 풀게 되면 우리 비즈니스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판단인 것 같아요. 이건 온종일, 몇 날며칠을 하나의 문제에 매달려 보고 깊게 고민한 사람만 얻을 수 있는 리워드 같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말이죠

그렇다고 모든 걸 직접 머리로 짜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경쟁사 기능을 한 줄로 요약하거나, 긴 리서치 자료에서 핵심만 추리거나, 회의록을 정리하는 일. 이런 건 오히려 비워내야, 정작 중요한 판단에 쓸 시간과 여유가 생깁니다. 문제는 그 경계를 나누지 않고 판단까지 전부 넘겨버리는 행동입니다.

무엇을 먼저 할지, 이게 진짜 풀어야 할 문제인지, 이 결정으로 얼마나 달라지는지. 이건 AI가 대신 정리해 주는 순간 내가 사라집니다. 좋은 활용은 사고를 없애는 게 아니라, 안 해도 되는 것들을 덜어내서 진짜 해야 할 판단에 집중하는 일이에요.

저는 요즘 의식적으로 한 가지 행동을 합니다. 클로드에게 묻기 전에 나만의 생각과 고민 포인트를 적어보고, 가설도 써보고, 뭘 먼저 해야 할지를 간단히 적어봅니다. 그리고 클로드의 대답과 비교해 봅니다. 얼추 맞으면 확신이 생기기도 하고, 틀리면 어디서 어긋났는지 확인해보고 있어요. 별것 아니긴 한데, 이 간단한 메모로라도 제 사고의 영역을 거치는 과정을 만들고 있습니다. 또 갑자기 어느 날 회의에서 "그래서 이게 뭐였죠?”라고 기억조차 못하는 상황에는 놓이기 싫어서요. 스스로 답할 수 있는 PM과 답이 막히는 PM의 차이가 앞으로 벌어질 격차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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