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많이 쓰는 PM이 AI를 잘 쓰는 PM은 아니다
AI 도입을 독려하는 조직 안에서, '사용량'이라는 숫자가 역량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혁명이라 생각했고, 그다음엔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고, 지금은 조금씩 '현명하게 쓴다'는 게 무엇인지 감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완벽한 답은 없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점을 공유합니다.
- 작성자: Lina
15초 요약
AI 사용량은 활용 수준의 지표가 아닙니다. PM에게 진짜 중요한 건 AI가 만들어준 결과물을 얼마나 잘 편집하고, 어디에 쓰지 않을지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AI를 많이 쓰는 PM'과 'AI를 잘 쓰는 PM'은 다릅니다. 전자는 모든 작업을 AI에 위임하고, 후자는 어떤 작업을 AI에 맡길지 스스로 결정합니다. 조직이 사용량을 KPI로 삼는 순간, PM은 AI를 '잘 쓰는 법'을 고민하는 대신 '많이 쓰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건 화려하지만 텅 빈 PRD입니다.
알아두면 좋은 용어
- AI 사용량(AI Usage Rate): 조직이 AI 도구 활용도를 측정하는 방식. 토큰 소비량, 프롬프트 횟수 등으로 측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지표는 '얼마나 많이 썼는가'를 보여줄 뿐, '얼마나 잘 썼는가'는 담지 못합니다.
- AI 생산성 역설(AI Productivity Paradox): AI를 많이 쓸수록 개인의 산출물은 늘어나지만, 팀 전체의 성과로는 이어지지 않는 현상. Faros AI가 22,000명의 개발자 데이터를 분석하며 붙인 이름입니다.
- 컨텍스트(Context): AI가 결과물을 만들 때 참조하는 배경 정보. 우리 팀의 히스토리, 서비스 구조, 개발팀과의 암묵적 합의 같은 것들은 AI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이 간극이 PRD 품질의 핵심 변수입니다.
- 커뮤니케이션 비용(Communication Cost): 문서나 기획의 모호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적인 질문, 회의, 재작업의 총합. AI가 만든 문서가 개발팀의 혼란을 유발하면, 시간을 절약한 게 아니라 오히려 비용을 만든 셈입니다.
Y's Insight
오늘의 Y's Insight는 쿠팡과 무신사에서 8년간 PM으로 근무하며 '제품 문서의 실행력과 팀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해온' Lina님이 작성했습니다.
혁명이라 생각했는데, 개발팀이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처음 AI로 PRD를 써봤을 때는 정말 신세계였습니다. 몇 마디만 입력했을 뿐인데, 개발팀이 늘 "더 구체적으로 써달라"고 했던 내용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나왔습니다. 속으로 '이건 혁명이야'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PRD를 개발팀과 함께 리뷰하면서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AI가 임의로 정의한 파라미터 이름들, 우리 서비스 컨텍스트와 맞지 않는 예외 케이스들, 실제로는 쓰지 않을 기능 정의들. 개발자들이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들고 왔습니다. "이 파라미터 이름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이 케이스는 우리 서버 구조상 이렇게 처리가 안 되는데요." 화려해 보였던 문서는 실제로는 수정할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AI를 어디에 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조를 잡는 데 쓰고, 내가 놓친 케이스를 찾는 데 쓰고, 나머지는 직접 씁니다. 완벽한 공식을 찾은 건 아니고, 실패를 반복하며 조금씩 감을 익히는 중입니다.
그런데 팀 회의에서 "AI 활용률을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저는 조용히 불안해졌습니다. 동료들은 한도를 다 써서 증액 요청을 하는데, 나는 도대체 잘 쓰고 있는 걸까.
"많이"가 아니라 "어디에"가 중요합니다
불안함이 가라앉고 나서 생각해 보니, 한 가지 질문이 남았습니다. 동료들은 AI로 무엇을 그렇게 많이 하고 있는 걸까?
흥미롭게도, 연구 결과들은 이 불안을 다른 방식으로 해소해 줍니다.
AI 안전성 연구기관 METR은 2025년, 숙련된 오픈소스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AI 도구 사용 여부에 따른 실제 작업 시간을 측정했습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AI를 사용한 개발자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오히려 작업 시간이 평균 19% 더 걸렸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그 개발자들 스스로는 AI 덕분에 20% 빨라졌다고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사용량과 체감, 그리고 실제 효과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원문 발췌 (METR, Measuring the Impact of Early-2025 AI on Experienced Open-Source Developer Productivity, 2025 → 출처: https://metr.org/blog/2025-07-10-early-2025-ai-experienced-os-dev-study/
Faros AI가 22,000명의 개발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AI 도입률이 높은 팀에서 개인의 산출물은 늘었지만, 팀 전체의 배포 속도는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코드 리뷰 시간이 91% 증가했습니다. 개인이 빨라진 만큼, 팀의 검토 부담이 그대로 쌓인 겁니다. Faros AI는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바로 AI 생산성 역설입니다. '많이 쓰는 것'이 '잘 되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원문 발췌 (Faros AI, The AI Productivity Paradox Research Report, 2025) → 출처: https://www.faros.ai/blog/ai-software-engineering
PM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PRD를 잘 써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물이 개발팀과의 리뷰를 통과하지 못하면 오히려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늘어납니다. AI 사용량은 올라가도, PM의 실질적인 생산성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Productside의 2026년 리포트는 이를 명확하게 정리합니다. 2026년 PM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AI 도구를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강한 판단력과 현명한 AI 활용을 결합하는 것이라고요. 저는 그 '현명한 활용'이 결국 어디에 AI를 쓰거나 쓰지 않을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문 발췌 (Productside, The AI Product Manager Skills Every PM Needs in 2026, 2026) → 출처: https://productside.com/top-ai-product-manager-skills-in-2026/
PM이 AI를 현명하게 쓴다는 것
그렇다면 PM에게 AI를 현명하게 쓴다는 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AI에게 맡겨도 되는 것: 구조 잡기, 누락된 케이스 검토, 초안의 첫 번째 틀. AI는 내가 놓친 관점을 빠르게 펼쳐 보여주는 데 탁월합니다.
내가 직접 해야 하는 것: 우리 서비스의 컨텍스트, 개발팀과의 암묵적 합의, 이 기능이 왜 지금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 이건 AI가 모릅니다. 아무리 프롬프트를 잘 써도, AI는 지난 분기 회고에서 개발팀장이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결국 PM이 AI를 써야 하는 이유는 빠르게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AI를 브레인스토밍 파트너로 쓰고, 편집자로 쓰고, 내 논리의 빈틈을 찾아내는 도구로 씁니다. 그 결과물의 책임은 여전히 저에게 있습니다.
이런 액션을 취해보세요
- AI 사용 기록을 용도별로 분류해 보세요: 이번 달 AI를 어떤 목적으로 썼는지 돌아보세요. 초안 작성인지, 리뷰인지, 단순 검색 대용인지. 용도를 분류하면 어디서 진짜 효과가 났는지 보입니다.
- 'AI 전후'를 비교하는 습관을 만드세요: AI가 써준 PRD와 내가 최종 수정한 PRD를 나란히 놓고 무엇이 바뀌었는지 봐 보세요. 수정 범위가 넓다면, AI를 다르게 쓸 자리가 있다는 신호입니다.
- AI에게 '반론'을 부탁해 보세요: 내가 쓴 기획서를 AI에게 주고 "이 기획의 약점을 찾아줘"라고 해 보세요. 생성보다 검토에 AI를 쓰는 것이 훨씬 강력합니다. 동료 리뷰보다 빠르고, 생각보다 날카롭습니다.
- 'AI 없이 못 쓰는 것'과 'AI가 더 잘 쓰는 것'을 구분하세요: 전자는 실력의 공백이고, 후자는 현명한 위임입니다. 둘은 다릅니다.
근데 말이죠
AI 사용량을 KPI로 삼는 조직의 고민도 이해합니다. 도입 초기에는 활용 자체가 목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곧 바뀔 겁니다. '얼마나 썼나'에서 '써서 뭐가 좋아졌나'로.
그 전환이 오기 전까지 불안할 수 있습니다. 동료들이 한도를 다 쓰는 걸 보면서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 저도 아직 그 답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점점 확신하게 됩니다. AI 시대에 성장하는 PM은 AI를 많이 쓰는 PM이 아니라, AI 결과물에 자기 판단을 더할 줄 아는 PM입니다.
AI가 초안을 써줄 수 있어도, 그 문서에 책임지는 건 결국 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