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tah
Y's Insight14

레고를 살린 건 빅데이터가 아니라 낡은 스니커즈였어요

고객 관찰 · 현장 리서치 · 인사이트 도출2026.05.08

현장에서만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요즘 들어 이런 말을 자주 들어요. "데이터 있잖아요", "AI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나요?", "고객 설문 돌렸어요." 다 맞는 말이에요. 근데 왠지 찜찜한 느낌이 남는 경우가 있죠. 데이터는 있는데 이 결정이 맞는지 확신이 안 서는 경우 말예요. 저는 고객을 직접 만나면서, 그 찜찜함이 어디서 오는지 계속 생각해왔어요. 데이터와 AI가 놓치는 게 분명 있어요. 그게 뭔지 한 번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작성자: 멘토 Fred (서원용)


15초 요약

데이터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줘요. 왜 그랬는지는 현장에서만 보여요.

AI도 있고 데이터도 넘치는 시대예요.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오히려 고객을 직접 만나는 사람이 더 희귀해졌어요. 다들 AI한테 물어보느라 바쁘거든요.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현장에서 발견한 작은 신호 하나가 더 결정적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알아두면 좋은 용어

  • 빅데이터 (Big Data): 대규모로 수집되는 정량적 데이터예요. 무슨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지를 알려줘요. 패턴을 보는 데 강하지만, 그 패턴이 왜 생겼는지는 알려주지 않아요.
  • 맥락 (Context): 고객의 행동이 일어나는 상황, 장소, 이유예요. 같은 행동도 맥락이 다르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져요. 현장에 가야만 보이는 것들이 여기 있어요.
  • 에스노그래피 (Ethnography): 고객의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직접 관찰하는 리서치 방법이에요. 인터뷰만으로는 나오지 않는 것들이 현장 관찰에서 나와요. 레고가 위기에서 탈출한 핵심 방법이기도 해요.
  • JTBD (Jobs to be Done):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는 건 단순히 제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특정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는 관점이에요. 고객이 우리 제품에 어떤 일을 시키고 있는지를 알면, 제품의 방향이 달라져요.

Y's Insight

오늘의 Y's Insight는 쿠팡·토스·크몽 등 프로덕트 회사에서 20년간 UX 리서처로 일하며, 0-1 단계 스타트업부터 성장기 제품까지 2,000건 이상의 고객 인터뷰를 진행한 멘토 Fred(서원용)님이 작성했습니다.


레고는 빅데이터가 있었는데, 완전히 틀렸어요

1998년, 레고는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냈어요. 2003년에는 매출이 전년 대비 30% 떨어졌고 부채가 8억 달러까지 쌓였어요.

레고는 빅데이터를 봤어요. 비디오 게임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아이들이 화면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요즘 아이들은 복잡한 걸 싫어한다. 즉각적인 만족을 원한다."

그래서 블록을 더 크고 단순하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매출은 계속 떨어졌습니다.


에스노그래피로 진짜가 보였어요

방향을 바꿔서, 직원들이 아이들의 집을 직접 방문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옆에서 지켜봤어요. 설문이나 인터뷰가 아니라, 고객의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직접 관찰하는 에스노그래피였어요.

거기서 레고와 게임을 좋아하는 한 아이를 만났어요. 근데 그 아이가 정작 가장 소중히 여긴 건 낡은 스니커즈였어요.

"신발에 낡은 이 부분이, 내가 최고 스케이터라는 증거예요."

아이들은 단지 쉬운 것을 원하는 게 아니었어요. 어렵더라도 끝까지 해낸 경험, 성취감을 원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후로 레고는 블록을 더 작고 복잡하게 만들었어요. 2006년 영업이익률은 15.6%로 회복됐고, 지금은 세계 최대 완구 기업이 됐어요.

빅데이터는 즉각적인 만족이라고 말했어요. 현장은 성취감이라고 말했어요. 완전히 반대였었죠.


AI도 마찬가지, 평균을 잘할 뿐이에요

요즘은 AI에게 물어보면 고객 페르소나도 만들어주고, 시장 분석도 해줘요. 대체로 맞는 말을 해줘요. 근데 대체로 맞는 말은, 아무에게도 맞지 않는 말이기도 해요.

AI는 수많은 데이터에서 가장 그럴듯한 패턴을 말해줘요. 그래서 AI가 내놓는 고객 이야기는 통계적으로 맞지만, 결정적인 신호를 놓쳐요. 어색한 발언, 감정의 전환, 민감한 질문 뒤의 침묵. 이런 것들을 AI는 튀는 값으로 처리하거나 더 자연스러운 언어로 바꿔버려요.

근데 진짜 인사이트는 대부분 거기서 나와요. 낡은 스니커즈 같은 발견은 설문에서 안 나왔어요. 빅데이터에서도 안 나왔어요. 아이 옆에 앉아서 에스노그래피 방식으로 지켜봤을 때 나왔어요.


고객이 처음 하는 말은 표면이에요

저는 수많은 다양한 고객을 직접 만났어요. 그 시간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한 게 있어요. 고객이 처음 내놓는 대답은 표면이에요. 틀린 건 아니에요.

  • "편해요."
  • "괜찮아요."
  • "그냥 쓰고 있어요."

이런 말 뒤에는 항상 더 있어요. 고객 자신도 미처 정리하지 못한 말, 감정, 불편함 등. 고객의 맥락을 알아내려면 질문 방식이 달라야 해요. "불편한 게 있으세요?"가 아니라 "지난번에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어요?"로 물어야 해요. 경험을 꺼내도록 하는 거예요. 그 경험 속에 진짜 고객의 소리가 있어요.


고객은 우리 제품에 어떤 일을 시키고 있는가

고객이 제품을 쓰는 이유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른 경우가 생각보다 많아요.

우리는 A를 위해 만들었는데, 고객은 B를 위해 쓰고 있는 거예요. 이걸 Job to be Done, 고객이 제품에 시키는 일이라고 해요. 그리고 그 B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어요. 이건 현장에서만 알 수 있어요.

"이 기능이 왜 좋으세요?"가 아니라 "이거 주로 어떤 상황에서 쓰세요?"라고 물어봐야 해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으로 쓰고 있는지. 그 맥락을 알아야 고객이 우리 제품에 시키고 있는 JTBD가 보여요. 그리고 제품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해요.


이런 액션을 취해보세요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아도 돼요.

첫째, 고객 한 명을 직접 만나보세요.

인터뷰가 어렵다면 관찰부터 시작해도 돼요. 우리 제품을 쓰는 사람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거예요. 어디서 멈추는지, 어디서 예상과 다르게 행동하는지만 봐도 충분해요. 에스노그래피라고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고객을 관찰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에요.

둘째, 첫 번째 대답에서 멈추지 마세요.

"편해요"라는 대답이 나오면 이렇게 물어봐요. "가장 최근에 쓰셨던 게 언제예요? 그때 어떤 상황이었어요?" 경험을 얘기하도록 하는 거예요. 맥락이 나오면 표면 아래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돼요.

셋째, 경험을 더 깊이 파고드세요.

경험을 꺼냈으면 거기서 멈추지 않아요. "그때 어떻게 하셨어요?", "그렇게 하신 이유가 뭐예요?" 행동의 이유가 나오면 "그 전에는 어떻게 하셨어요?"로 더 거슬러 올라가요. 대화가 깊어질수록, 고객이 우리 제품에 시키고 있는 JTBD가 보이기 시작해요. 낡은 스니커즈 같은 발견은 첫 번째 대답이 아니라, 세 번째 네 번째 질문 뒤에 나왔을 거예요.


근데 말이죠

현장 관찰이 만능은 아니에요.

소수를 깊이 보는 건 방향을 잡는 데 강하지만, 그게 전체에 통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예요. 인상적인 한 사람의 이야기에 과도하게 끌리는 것도 함정이에요. 레고도 낡은 스니커즈 하나로 전략을 바꾼 게 아니었어요. 에스노그래피를 통해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반복적으로 같은 패턴을 확인했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발견한 맥락도 결국 가설이에요. 그 가설을 검증하는 데는 빅데이터가 필요해요.

현장은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데이터는 그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알려줘요. 현장 없이 빅데이터만 보면 레고처럼 되고, 데이터 없이 현장만 보면 확신하기 어려워요.

좋은 의사결정은 두 가지를 오가는 능력에서 나와요. 현장에서 신호를 잡고, 데이터로 검증하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 그 반복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