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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Insight#11

나는 바쁘게 일했는데, 승진 서류에 쓸 게 없었어요

성과 평가, 승진2026.04.17

Glue work를 잘할수록 승진이 멀어지는 이유

엔지니어링 테크리드이자 작가인 Tanya Reilly가 처음 개념화한 글이에요. 팀을 '연결하는(glue, 붙이는)' 일이 조직에 꼭 필요하면서도, 정작 승진 심사에서는 왜 불리하게 작용하는지를 구조적으로 짚습니다. PM 업무의 많은 부분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평가 제도는 이걸 잘 담아내지 못하거든요. 제가 실제로 겪었던 허탈함이기도 해서 이 주제를 골랐습니다. https://noidea.dog/glue


15초 요약

PM의 업무지만, 보이지 않는 일이 있어요. Glue work를 잘할수록 역설적으로 승진은 정체됩니다.

PM 업무 중 많은 시간은 팀 사이를 조율하고 병목을 풀어주는 일에 쓰여요. 그런데 성과 평가는 '본인이 주도해서 만든 임팩트'를 쓰라고 하죠. Glue work를 잘하는 PM일수록 역설적으로 승진에서 밀리는 구조예요. 이 간극을 인식하고, Glue work와 정량 성과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알아두면 좋은 용어

  • Promo Packet: 빅테크(Meta)에서 쓰는 승진 심사 문서. 한국 기업의 상·하반기 평가 서류, 승진 심사 자료가 같은 역할을 해요.
  • Glue Work: 팀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조율 업무.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아무의 성과 지표에도 들어가지 않는' 일. Tanya Reilly(2019)가 처음 개념화했어요.
  • 영향력: PM 커리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핵심 스킬. 사실상 Glue work의 다른 이름이에요.
  • 정량 성과: 내가 주도해서 만든 결과. 출시한 기능, 바뀐 지표, 매출 증가처럼 눈에 보이는 숫자로 표현되는 결과물.

Y's Insight

오늘의 Y's Insight는 쿠팡, 토스 등에서 14년간 PM으로 일해온 멘토 파커(Parker)님이 작성했습니다.


늘 바빴는데, 쓸 게 없더라고요

들어가기 앞서, 이 글에서 Glue work, 보이지 않는 영향력, 조율은 다 같은 의미로 썼어요.

승진을 위해 자료를 준비하는데, '제 개인의 업적과 기여'를 써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제가 이끄는 팀의 성과'가 '저의 성과' 라고 생각해왔거든요. 여기서 저와 회사 사이의 간극이 있다 보니, 막상 빈 문서를 여니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저는 늘 바쁘게 일했고, 이뤄낸 것도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작성하려니 팀을 위해 헌신했던 일, 원팀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들은 숫자로 표현하기 어렵고, 평가 지표에는 없다는 사실이 허탈하게 다가왔어요.

저는 쿠팡에서 Lv5에서 Lv6까지 승진하는 데 2년 3개월이 걸렸습니다. 승진 주기로는 평균적인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누구는 초고속 승진을 하죠. 반대로 만년 Lv5에 머물기도 하고요.

승진에 작용하는 가장 큰 요소는 뭘까요? 결국 회사는 '어떤 성과를 만들어 냈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 같아요.


제가 일했던 방식과 회사의 기준은 달랐어요

돌이켜보면, 제가 일했던 방식은 회사의 승진 기준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었어요.

  1. 문제를 찾는다 → 리더가 발견한 문제 또는 제가 발견한 문제
  2. 문제를 해결한다 → 저의 지시로 팀원이 해결
  3. 성과가 발생한다 → 팀원 개인 성과이자 팀의 성과

누가 문제를 찾았든, 해결하면 성과가 난다는 걸 예상했고, 팀 단위로 움직였어요. 팀원에게 지시하고, 그게 잘 굴러가도록 아낌없이 지원했죠. 이런 지원은 팀원이 알 수도 있지만 모르는 게 더 많고, 회사는 아예 모르죠.

개발 리드가 거절한 요구사항을 설득해서 겨우 밀어넣고, 디자이너의 이쁘고 화려한 디자인을 최소 기능만 적용할 수 있게 조율하고, 이 프로젝트를 최우선순위로 올리기 위해 다른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를 내리면서 이해관계자들의 불만과 눈총을 받고. 팀원의 우산이 되어주기도 하고 욕받이가 되기도 하고, 프로젝트를 굴리기 위해 어떻게든 뭐든 했던 것 같아요.

그뿐인가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제 시각과 팀원의 시각이 맞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정렬을 해야 합니다. 단계마다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죠.

이렇게 일했더니, 승진을 위해 뭘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근데 재미있는 건, 이게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글로벌 빅테크 Meta에서도 L5에서 L6로 3~4년씩 승진하지 못하는 PM들이 있고, 이들 대부분이 '조직을 가장 잘 굴리는 사람'이라고 해요. 반대로 Glue work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본인 이름이 걸린 프로젝트만 챙기는 PM이 오히려 빠르게 승진한다고 합니다.

저는 Glue work가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했었어요. 물론 중요한 것도 맞죠. 제가 팀 리드인데, 어떻게 중요하지 않겠어요. 팀을 움직여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 업무는 회사가 반드시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죠.

누군가 힘들어하면 제가 먼저 1on1을 신청하고, 이해관계자를 만나 팀의 상황과 사정을 이해시키고, 제 리더에게 아부 섞인 말도 하고. 이런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PM으로서 분명한 강점이고, 팀과 조직을 움직이는 능력이라고 아직도 저는 믿어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도, 그럼에도 팀을 이끌기 위해 하는 거예요.

다만 제가 놓치고 있었던 건, Glue work를 잘하는 것과 Glue work를 잘한다고 인정받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점이었어요. Glue work를 잘하려고 노력했지, 이걸 개인의 임팩트와 승진에 연결하는 연습은 사실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런 액션을 취해보세요

첫 번째 승진 심사에서 고배를 마신 뒤부터는 아래와 같은 액션을 취했어요.

1. Glue work를 기록하세요.

  • '이번 주에 이해관계자를 설득한 일'이 무엇이었고, 그 실익이 무엇이었는지 기록해 두세요.
  • 협업 팀과의 요구사항 갈등을 해결한 상황, 그게 프로젝트 진행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남겨두세요.
  • 기타 여러 일들을 '별거 아닌 일'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나만의 기록으로 저장·관리하세요.

2. 나의 영향력이 닿았던 사람에게 피드백을 구하세요.

  • 내가 도와줬던 동료가 내 리더에게 보낸 한 줄 피드백이 생각보다 꽤 도움이 됩니다.
  • 리더에게는 맥락을 함께 공유하세요. 맥락이 없는 피드백은 이해되지 않거든요.
  • 성과를 나눴던 다른 팀의 리더에게 피드백을 부탁해 보세요. 리더 그룹의 한마디 인정은 큰 영향을 발휘합니다.

3. 팀 프로젝트가 아닌, 내가 주도하는 프로젝트 한 개는 확보하세요.

  • 분기마다 최소 하나는 '나만의 성과'라고 말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수행하세요.
  • 팀 단위 프로젝트만 하다 보면 평가받을 재료가 없어요.
  • 팀을 위한 일과 내 승진·보상을 위한 일은 같지 않습니다. 둘 다 챙겨야 해요.

실제 적용 사례

Meta — Promo Packet 반기마다 정량 성과를 문서로 증명해야 L5에서 L6로 올라갈 수 있어요. 조직을 가장 잘 이끄는 PM이 3~4년씩 승진을 못 하는 구조적 문제가 공개적으로 회자되고, Reddit 같은 커뮤니티에 관련 불만이 주기적으로 올라옵니다. 반대로 Glue work는 하지 않고 프로젝트 Owner 역할만 맡는 PM이 빠르게 승진해요.

Stripe — 360 피드백 팀에 끼친 영향력을 정성 평가가 아닌, 동료 360도 피드백으로 계량화합니다. Glue work를 주변 동료가 증언하는 방식으로 평가에 반영해요.

Figma — PM에게 의도적으로 여유 부여 PM 한 명당 담당 제품 수를 의도적으로 적게 유지해서, Glue work에 쓸 시간을 확보해줍니다. 매니저 1on1에 "이번 주에 누구의 병목을 해결해 줬는가?" 같은 질문이 상시 포함돼 있어요.


근데 말이죠

지금 다니는 회사가 Glue work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요?

위 액션들은 회사가 들으려 할 때만 작동해요. 쿠팡에는 'Influence without authority'라는 리더십 원칙이 있어요. 이 원칙이 Glue work에 완벽히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지위·권한과 관계없이 영향을 끼치라는 뜻에 가깝긴 하죠. 아무튼 Glue work를 아무리 정량화해서 들이밀어도 "그게 성과냐"라고 되묻는 조직에서는 승진하기 어려워요. 평가는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아니라 '측정하기로 합의된 것'만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개인의 노력으로 풀 수 없어요.

이럴 때 PM에게 남는 선택지는 세 가지입니다.

1. 이끌든지.

평가 기준을 바꿔달라고 말하는 선택이에요. 리더와 평가 항목 자체를 협상해 보는 거죠. 한국 기업에서 가장 쓰기 어려운 선택지이긴 해요. "제 성과는 이런 방식으로 봐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해도, 돌아오는 답은 "그건 성과가 아니야"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선택은 어느 정도 연차가 쌓였고, 리더와 신뢰가 형성된 상태에서만 쓸 수 있어요. 그때도 '요구'가 아니라 '제안' 형태로, 숫자와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가야 먹힙니다.

2. 따르든지.

승진과 보상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선택이에요. 지금 자리에서 내 페이스로 일하는 것. 의외로 많은 PM이 이 선택을 합니다. 자기 효능감이 더 압도적으로 다가오면, 승진과 보상은 알파의 개념으로 두는 거죠. 팀원이 좋거나, 일 자체가 의미 있거나. 다만 이 선택은 '내가 지금 무엇을 우선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자기 주도적 결정이 수반돼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 보면, 몇 년 뒤에 승진도 못 하고 보상도 못 받고, 내 가치도 부질없게 느껴지는 상황이 올 수 있어요.

3. 비키든지.

가장 쉽고 빠른 선택입니다. 회사를 떠나는 거예요. 한국 IT 업계에서 '영향력'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평가 항목에 명시한 회사는 아직 많지 않아요. 다만 이직할 때는 회사 브랜드보다 앞으로 내 리더가 될 분이 어떤 사람인지, 그 팀의 평가 문화가 어떤지를 업계 정보나 지인, 블라인드 등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 같은 회사 안에서도 리더 성향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거든요. '회사'보다 '리더'를 보고 옮기는 게 한국 조직에서는 더 맞는 것 같아요. 이것도 쉽지는 않지만요.


Glue work 문제는 혼자 해결할 수 없습니다. 회사의 평가 제도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지금 어떤 평가 제도 안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나는 어떤 스탠스로 임할지 정해보는 정도예요. 그 인식이 없으면, Glue work를 자처하는 것이 저처럼 회사와 나 사이의 간극을 벌리는 셈이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라도 Glue work와 정량 성과, 두 가지를 모두 해내고, 나아가 두 가지를 연결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보시길 바라요.